2021년 개봉한 영화 ‘스펜서(Spencer)’ 는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Diana Spencer) 의 삶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감독 파블로 라라인(Pablo Larraín) 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한 여성이 ‘왕실의 틀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찾는 내면의 여정’을 예술적으로 그려냈다.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 는
섬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 연기로 극찬받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스펜서’의 주인공 다이애나의 인물상,
줄거리, 그리고 감독의 제작 의도를 중심으로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주인공 소개 , 다이애나 스펜서, 왕실의 감옥 속에 갇힌 인간
‘스펜서’의 주인공 다이애나 스펜서 는 실존 인물로,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화려한 왕실 생활 뒤에는
끝없는 고독, 우울,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영화 속 다이애나는 더 이상 ‘왕세자비’가 아닌,
한 명의 여성, 어머니,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되찾고자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는 왕실의 규범과 전통, 완벽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감정이 허락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점점 무너져 간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인물을
억눌린 고통과 불안, 그리고 미묘한 반항심이 교차하는 인물로 표현한다.
그녀의 떨리는 손, 불안한 시선, 귓속을 스치는 목소리들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심리적 붕괴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제목 ‘스펜서’는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이다.
즉, 이 작품은 “왕실의 다이애나”가 아닌 “진짜 다이애나” 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녀가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곧 영화의 핵심이다.
줄거리 ,크리스마스 사흘간의 고립된 진실
이 영화는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
영국 왕실이 샌드링엄 저택에서 휴가를 보내던 단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통적인 의미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다이애나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심리적 판타지 드라마다.
첫 장면에서 다이애나는 길을 잃고 있다.
그녀는 차를 몰고 시골길을 헤매며 저택으로 향하지만,
길은 낯설고 주변은 을씨년스럽다.
이 설정은 그녀가 왕실 안에서 길을 잃은 삶을 상징한다.
샌드링엄 저택에 도착한 그녀는
찰스 왕세자와의 관계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한다.
왕실은 냉담하고, 감정 표현은 금기시된다.
모든 식사는 의식처럼 진행되고,
모든 행동은 규율에 따라야 한다.
그 속에서 다이애나는 점점 숨이 막힌다.
그녀는 망상과 환각에 시달리며,
과거의 자신 — 즉 ‘스펜서’로서의 자유로운 시절 — 을 떠올린다.
영화 속에서는 과거의 고향, 어린 시절, 그리고 부모의 기억이
몽환적인 이미지로 교차된다.
그녀는 왕실의 의복실에서
과거의 옷과 현재의 드레스를 번갈아 입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심지어 유령처럼 등장하는 앤 불린(Anne Boleyn)의 환영은
‘왕실이 여성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이애나는
아들 윌리엄과 해리를 데리고 왕실을 떠난다.
그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이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지만,
상징적으로 ‘해방의 순간’,
즉 다이애나가 다시 ‘스펜서’로 돌아가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 3일간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다이애나의 심리적 세계를 압축한 내면의 여행이다.
따라서 ‘스펜서’는 전기 영화가 아니라
감정의 초상화에 가깝다.
제작 의도 , 현실보다 깊은 감정의 진실
감독 파블로 라라인 은 이미 ‘재키(Jackie, 2016)’ 를 통해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의 내면을 다룬 적이 있다.
‘스펜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단순히 유명 인물을 재현하는 대신,
그 인물의 **‘심리적 감옥’**을 탐구한다.
라라인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사실이 아니라 ‘상상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상상 속에, 그녀의 진짜 감정이 숨어 있죠.”
그는 다이애나를 비극적 희생자가 아닌
자유를 향해 싸운 인간으로 묘사한다.
왕실의 전통은 영화 속에서 거의 공포영화처럼 그려진다.
냉랭한 복도, 기계적인 식사 장면,
그리고 감정이 억압된 대화들은
‘권력의 시스템’이 한 사람의 인간성을 어떻게 갉아먹는지를 보여준다.
촬영감독 클레어 마통(Claire Mathon) 의 카메라는
좁은 공간, 무거운 공기, 흐린 조명을 통해
다이애나의 고립감을 극대화한다.
화려한 드레스와 대비되는 어두운 색조는
‘감옥 안의 여왕’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또한 음악감독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 의
불안한 현악기 사운드는,
다이애나의 내면 불안을 실시간으로 들려준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불안과 해방의 경계 위에 서 있는 듯하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 비판도 받았지만,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진실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
즉, 이 영화는 다이애나가 느꼈을 ‘감정의 진실’을 그린 작품이다.
결국 ‘스펜서’는 여성의 자아 찾기에 대한 영화이며,
사회적 역할에 갇힌 모든 인간의 이야기를 상징한다.
그녀는 단지 왕실의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려 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결론
‘스펜서’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으로 깊고 예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화려한 궁전 속에서 무너져가는 한 여성의 내면을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진짜 이름으로 살고 있는가?”
다이애나는 결국 왕실을 떠나 자신의 존재를 회복했다.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자유의 선언이었다.
‘스펜서’는 바로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영화다.